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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춤추는 사진가

함께 작업하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저녁식사를 하다 말고 새로 콤팩트 디카를 샀다며 자랑을 한다. 어두운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대낮같이 환하고 뽀얗게 나온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요즘 디카들 참 잘 나오지?”라고 그의 자랑에 장단을 맞춰 주다가 “어디 한번 줘봐.”하며 카메라를 건네 받아 요모조모 살펴봤다. 그날 나는 라이카 m8을 가지고 있었고 라이카로 그가 찍은 저녁상을 똑같이 촬영했다. 하지만 그가 찍은 50만 원짜리 조그만 디카 속의 저녁상은 몇백 만원짜리 라이카로 촬영한 것보다 누가 봐도 더 환하고, 더 멋졌다.

 ‘아, 이런.’ 이 조그만 카메라는 정말 전문 사진 작가를 뻘쭘하게 만든다. 내가 20년 동안 갈고 닦았던 사진 테크닉은 어처구니없이 영리해진 최신 카메라 앞에서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 110동 앞 벚나무는 새봄이 오면 110이라는 숫자를 가릴 만큼 커버릴 것이다. / 2010


↑ Wastes Waste Series. 2009

요즘 출시되는 카메라들은 고맙게도 점점 둔해지는 나를 위로하듯 똑똑해져 간다.

눈이 좋지 않은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조용하게 초점을 맞춰 주고,

노출 때문에 걱정하는 내 소심함을 5cut씩 알아서 노출 보정을 준다.

흔들리는 내 수전증을 의사가 된 듯 진찰하여 알아차린 후 선명한 사진을 만들도록 도와 주며,

피노키오의 코처럼 쭉쭉 늘어나는 줌렌즈로 눈을 휘둥그레 만들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셔터와 조리개의 의미조차 모르는 유저들에게 유아틱한 아이콘들로 최대한의 친절을 베푼다.

뛰어가는 운동선수의 아이콘을 선택하면 하이스피드 셔터를 끊어 주며,

촛불 아이콘을 선택하면 몰래 감도를 높여 주고 조리개를 열어 준다.

꽃 아이콘을 선택하면 접사에 필요한 세팅을 그럴듯하게 차려 주기도 한다.

이러한 친절함은 수십 년 사진만 공부한 나와 수십 분 매뉴얼을 공부한 이들의 기술 수준을

평등하게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발휘한다.

너무 똑똑한 카메라들. 그리고 하룻밤 자고 나면 더 똑똑해지는 카메라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무뎌가는 내 두뇌를 보상해 주는 똑똑한 카메라들이 고맙지만

수십 년을 공부해 터득한 기술과 노하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려서 조금 얄미운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 Wastes Waste Series. 2009

더 이상 기술적으로 잘 찍는 것을 뽐내기 힘든 세상이 되고 있다. 영리한 최신 카메라가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 사진가들 사이의 기술적인 차이를 드라마틱하게 압축해버렸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두뇌가 점점 더 좋아질수록 우리는 ‘어떻게 찍는가?’ 보다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치 보릿고개 시절 ‘오늘은 어떻게 끼니를 때울까?’라는 원초적인 고민을 했던 것에 비해 먹을거리가 풍요로워진 오늘날 ‘무엇을 먹을까?’라고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 Wastes Waste Series. 2009

아무 생각 없이 공원에 쫄래쫄래 카메라를 메고 가는 것 보다

 촬영 날 아침 양치를 하면서 오늘은 무엇을 찍을지 생각하는 것은 꽤 유익한 방법이다.

내가 찍을 피사체를 머릿속에 상상으로 그려 놓고서 그것과 꼭 맞는 모양을 찾아내는 퍼즐놀이를 하는 것.

그것은 당신의 사진 세계를 풍성하거나 기존의 방식에서 조금 더 유연한 방식으로 사진을 유희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사진을 무척 빨리 찍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콘셉트의 유추는 신중하고 오래하는 반면,

촬영은 쉽고 빨리하는 것이 내가 가장 즐겁게 사진과 놀이를 하는 방법이다.

정성스레 준비된 양질의 콘셉트 작업을 쉽고 즐겁게 만들어 결국 사진가를 춤추게 한다.

치밀하고 일관성 있는 계획하에 촬영된 사진들은 하나둘씩 모여 당신의 스타일로 자리 잡고,

어느새 전문 사진 작가도 부러워할 당신만의 이야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라는 숙제는 카메라에게 맡겨라.

당신의 숙제는 최신형 카메라도 풀지 못하는 ‘무엇을’이라는 문제다.


 

포토몬 까칠한 김작가 김한준이 마련한 소소한 이벤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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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hotomon blog